진로·방향
갈팡질팡한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이어져 있었어요
김종혁
· 그동안의 경험을 선으로 잇는 사람

고양이를 만들던 도예 작가는 작업실을 떠나야 했던 일을 계기로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쉬러 간 목포에서 공방을 열었고, 서울에서는 공간을 다루는 회사에 다니고 도시공학을 공부했어요. 지금은 큰돈 없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그때 빌린 돈을 갚고 있어요.
해본 시도
목포 괜찮아마을 참여 · 공방 운영 · 지역 빈집을 여는 활동 · 공간 관련 회사 근무 · 도시공학 대학원 수료 · 목공 독학 · 가족·친구·멘토와 대화 · SNS로 전시 공간 구하기 · 중고책을 활용한 전시 기획 · 협업 연결 요청 · 해커톤 참여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상태가, 제게는 실패예요
저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미술 작업을 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도시재생 자문처럼 공간과 관련된 일도 해요. 하나의 직업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제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한 직장에 오래 다니고, 저축하고,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건 아니에요.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꾸려갈지도 계속 고민해요.
그래도 제게 실패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답할 것 같아요. 다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생활이 해결되지는 않아요. 지금은 그 두 가지를 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고양이를 만들다가, 작업할 공간을 잃었어요
부모님 두 분 다 미술을 하셨어요. 저도 입시 미술을 할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 도자기를 전공한 뒤 졸업하고 바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기법을 배웠다면, 밖에서는 제 작업을 찾아야 했어요. 처음에는 부모님 작업실에 얹혀서 작업했는데, 그곳에 고양이가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만들기 시작했고, 고양이 작가로 알려지게 됐어요.

2015년 12월에 첫 전시를 하고, 이듬해 봄에 두 번째 전시를 했어요. 생각보다 일이 빨리 풀렸어요. 백화점과 편집숍에 입점하고, 반려동물 박람회에서 작품을 팔기도 했어요. 그때는 박람회에 가도 강아지 제품이 대부분이었거든요. 2016년 말에는 뉴욕에 가서 작품을 선보이고 팔기도 했어요.
그러다 부모님 작업실을 떠나 제 작업실을 따로 마련했어요. 그런데 1년도 쓰지 못하고, 집주인이 직접 공간을 써야 한다며 나가달라고 했어요. 작업을 이어가려면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크게 느꼈어요.
부모님은 그럴 거면 다른 일을 배워 취업하라고 하셨어요. 작업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인데 작업할 자리가 없어졌고, 그동안 해온 작업도 흩어졌어요. 여러 일이 겹치면서 번아웃이 세게 왔어요.
목포에는 작업하러 간 게 아니라, 쉬러 갔어요
2018년 8월, 목포의 괜찮아마을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한동안 다른 지역에 머물면서 쉬고 자신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슬로건이 ‘쉬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였어요. 저는 뭘 새로 해보겠다는 계획보다, 우선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보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거리가 생기니 부딪히는 일도 줄었어요. 그곳에는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하고 온 사람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처음 일주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어요. 프로그램 안에서 그룹 상담도 받았고요. 그렇게 2주쯤 지나니 괜찮아졌어요. 사람이 회복하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다시 뭔가 만들고 싶은 마음이 돌아왔어요.
쉬기 전에는 앞으로의 일이나 공부를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요. 그런데 쉬어보니 세상은 생각만큼 저한테 관심이 없더라고요. 쉬어도 별 지장이 없었어요. 하루 쉬는 것도, 휴가 일주일도 조마조마해하며 쉬는 분들이 있는데, 쉬어도 괜찮을지는 쉬어봐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목포라는 동네가 마음에 들었어요. 근처에 작은 공간을 빌려 그해 11월에 공방을 열었어요. 처음부터 공방을 하러 내려간 건 아니에요. 쉬다가 다시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 거예요.

작은 도자기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공방을 운영하면서 동네 도시재생센터에서 일하는 또래들과 친해졌어요. 목포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집이 많아요. 센터 친구들이 집주인을 설득해 공간을 빌려 오면, 저는 창작자로서 공간을 고치고 시민들이 쓸 수 있게 여는 일을 함께했어요.

제가 공방을 연 동네는 평균 연령이 70대였어요. 서울에서 온 30대 외지인이다 보니 처음엔 낯설어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제가 해볼 수 있었던 건 먼저 다가가는 거였어요. 어르신이 집 앞에 화초를 내놓고 가꾸시면, 저도 식물을 좋아하니까 그걸로 말을 걸었어요. 대가족 사이에서 자라서 어르신들을 대하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도 도움이 됐어요. 제가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잘한다는 것도 그곳에서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에 관심이 더 커졌어요. 2019년 12월, 서울로 돌아오면서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조그만 컵을 만들던 제가, 다룰 수 있는 가장 큰 단위를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부동산과 공간을 다루는 회사에 들어가니 세상을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안 돼 코로나가 시작됐어요. 목포는 그때 정말 크게 타격을 받았어요.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서, 그 타이밍에 서울로 온 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회사는 1년 남짓 다니다가 2021년 1월에 그만뒀어요. 스타트업이라 연봉을 올리기도 어려웠고,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부동산이나 경영을 공부한 사람이 유리했어요. 그래서 이쪽을 제대로 공부해 보자며 도시공학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대학원은 수료까지 했어요. 30대 후반에 논문을 써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됐고, 정책을 다루는 논문 하나로 세상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다시 작가 활동 쪽으로 돌아왔어요. 당시에는 방향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지나온 길을 보면 서로 연결돼 있어요.
저는 계속 작업했는데, 공백이라고 하더라고요
목포에 있을 때도, 회사에 다닐 때도, 대학원에 다닐 때도 작업은 계속했어요. 개인전도 했고요. 그런데 다른 일 없이 작가 활동만 이어온 사람들과 비교하면, 제 이력은 공백이 너무 길어 보였어요. 초반에 열심히 해서 뉴욕까지 다녀온 것들이 다 소용없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갤러리 공모 같은 데 지원하면 이 기간에는 전시 경력이 없는데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아요. 회사 면접에서 공백기에 뭘 했느냐고 묻는 것과 똑같아요. 저는 힘들어서 쉬었던 건데, 그걸 그대로 말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런 질문을 받다 보면 저도 생각하게 돼요. 그때 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작업실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제가 어쩔 수 없었던 일까지 제가 선택한 결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 시간을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쉬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터졌을 거예요. 그때 쉬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돌아간다면, 그 돈은 빌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두 제가 한 선택이고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나쁜 선택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선택은 좋았는데 결과가 별로였던 게 있어요. 가장 후회하는 건 목포에서 공방을 운영하면서 돈을 빌린 일이에요.
목포에 갈 때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생활비만 가지고 갔어요. 집에는 일하러 간다고 말했기 때문에 돈 얘기를 꺼낼 수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갚지 않아도 되는 지원금 1,200만 원을 받아 1년 동안 공방을 운영했어요. 서울에서는 경쟁률이 몇백 대 일이라 몇백만 원 받기도 어려운데, 그곳에서는 지원자가 모자라서 더 받으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시설을 더 갖추고 싶어서 소상공인 융자와 대출로 4천만 원 정도를 빌렸어요. 당시에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신났어요. 그런데 금융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이,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갈지 생각하지 않고 빌렸어요.
서울에 올라올 때 빚도 같이 가지고 왔어요. 혼자 갚다가 어머니께 알려졌고, 부모님이 1천만 원 정도를 도와주셨어요. 나머지는 지금도 제가 갚고 있어요. 원금과 이자로 매달 200만 원 가까이 나가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그만큼은 써야 하는 거예요.
그걸 갚느라 마흔이 다 됐어요. 그때의 선택 때문에 지금의 제가 부담을 지고 있어서, 지금의 저에게 미안해요. 그래도 마흔이 되기 전에 겪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때 빌린 돈까지 좋은 경험이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생활은 버거워요
한동안은 개인전을 하면 수입이 꽤 있었어요. 그래도 생활비와 대관비, 재료비를 쓰고 빚을 갚으면 남는 게 거의 없었어요. 작년과 올해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어요.
전시 기획도 제가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제가 바라는 건 빚에 쫓기지 않고, 작업이나 전시 기획으로 버는 돈 안에서 생활을 감당하면서 작가 활동을 계속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로 번 돈으로 빚만 갚고 있으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구직을 하고 있어요. 아무 일이나 찾는 건 아니고, 제가 좋아하고 해온 일을 경력으로 이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요. 지금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고 있지만, 회사라는 바탕이 있으면 더 큰 규모의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번에는 공간부터 크게 차리지 않았어요
지금 하는 전시 기획은 작년 1월에 시작했어요. 돈도 사람도 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 하나를 예산 삼아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큰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어요. 무상으로 쓸 수 있는 곳이나 대관료가 낮은 공간을 찾아요. 요즘은 무상 공간을 찾기가 어려워서 4일에 50만 원 정도를 내고 빌리기도 해요. 한 달로 치면 차라리 공간을 임대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아침마다 새로 올라온 매물을 봐요.
공간이 필요하면 주변에 이야기하고 페이스북에도 올려요. 공간도 돈도 없다고만 쓰면 아무도 안 봐요. 이런 걸 하고 싶은데 일주일만 공간을 빌려주실 분을 구한다고, 구체적으로 적어서 계속 올려요.
바로 답이 오지 않을 때도 많아요. 그런데 2~3년 전에 올린 글을 기억했다가, 이번에 잠깐 비는 공간이 있는데 써보겠느냐고 연락해 주는 분들이 있어요. 돈이 없다고 하면 그냥 와서 쓰라고 하시기도 하고요. 그렇게 전시할 자리를 구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누군가는 펼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는 참여하는 걸 좋아해요. 저에게는 아이디어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공간이 있을 수 있잖아요. 혼자 모든 걸 갖추려 하기보다, 하려는 일을 알리고 연결될 사람들을 찾는 거예요.
한 번 열고 끝내지 않으니, 다음 이야기가 생겼어요
지금 기획하는 전시는 작가들이 중고책을 사서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림을 그려 보내주면, 제가 그 책을 한 장 한 장 뜯어서 전시하는 방식이에요. 제가 하던 전시 방식을 다른 작가들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저도 할까 말까 오래 고민했는데, 친구가 그냥 해보라고 한 한마디가 계기가 됐어요.

첫 전시를 열자마자 한 번 하고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의 한 달에 한 번, 작가 다섯 명씩을 섭외해 새 작업으로 전시를 열었어요. 작년에 아홉 번, 올해는 9월까지 네 번 열었고, 12월에 한 번 더 열 예정이에요.
중고책을 쓰는 전시니까 중고서점이나 출판사, 저자와 함께하면 더 커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 중고서점 쪽에 아는 분이 있으면 연결해 달라고 수소문했어요. 첫 전시가 끝나자마자 연락이 왔고, 소개받은 분이 두 번째 전시에 오셔서 협업 이야기를 나눴어요.
해보지 않았으면 이런 경험도 없었을 거예요. 한 번 해보고 끝내지 말고, 조언을 구해 보완해서 다시 해보고, 또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는 동안 사람들도 만나고 제 가능성도 확인하게 됐어요.
작품이 외롭지 않았으면 해서, 테이블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느냐고 물으면, 저는 관심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대학 때는 카페에 가면 눈에 보이는 건 다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영화 미술을 하는 분이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만들 수 있다고 해주신 말이 오래 남았거든요.
하얀 벽, 하얀 천장, 하얀 전시대가 있는 전시장에 제 도자기 하나만 놓여 있다고 상상했어요. 작품이 너무 외로워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무를 다루는 법을 독학해서 테이블 만드는 걸 배웠어요.
제가 만든 테이블 위에 제가 만든 도자기가 있으면 둘 다 제 작품이니까, 작품이 외롭지 않겠다 싶었어요. 거기서 더 나아가 벽지를 직접 그려 붙이고, 바닥에 장판을 깔고, 조명을 노랗게 바꾸는 상상을 했어요. 관심을 갖고 상상하는 데 익숙해지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을 다이어그램처럼 연결하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걸 못 찾겠다는 사람에게도 한번 그려보라고 권해요.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고, 그중 제일 하고 싶은 몇 개만 남기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남기고 지워보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걸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이어서 적어보는 거죠.
박수 쳐줄 사람이 있는 크기의, 작은 성공부터
처음에는 정말 작게라도 성공해 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관심 가진 걸 내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보여줬을 때, 최소한 주변 사람들이 박수 쳐줄 수 있는 크기요. 작은 게 쌓이면, 이 정도는 해봤으니 다음엔 이렇게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이어져요.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저는 큰돈을 빌려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갚고 있지만, 지금의 전시는 아무것도 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시작했어요. 처음 해보는 데 필요한 돈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고, 돈이 전부도 아니에요. 처음부터 큰길가의 큰 공간을 떠올리기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작은 씨앗부터 보면 좋겠어요.
혼자 하기 어렵다면 서로의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참여하고 피드백해 주는 작은 모임도 좋아요. 시청이나 구청 단위로 주민이 계획서를 내면 프로젝트마다 100만~2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주는 사업도 있어요. 한 달 동안 네 번 이런 프로그램을 해보겠다고 계획서를 내고, 잘되든 안 되든 직접 해볼 수 있어요.
혼자 생각할 때보다, 말하면서 저를 더 알아가요
저는 생각이 끝도 없는 사람이에요. 혼자 생각하다 보면 너무 깊이 빠지고 심각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친구나 어머니와 이야기를 많이 해요. 방향을 못 잡을 때는 멘토로 삼고 싶은 대표님들께 시간을 부탁해서 찾아가기도 해요.
그분들이 그래서 정작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답하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게 돼요. 상대가 해주는 말에서 도움을 얻기도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어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도 제가 이런 질문에는 이런 대답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전시가 끝나면 집에서 사나흘 나가지 않고 쉬기도 해요. 그런 시간도 필요하지만, 길어져서 우울하고 외로워지기 전에 밖에 나가요. 친구에게 전화하거나, 아는 사람이 일하는 가게에 가요. 꼭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 근처에 머물다 오는 게 도움이 돼요.
원래부터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꽤 우울한 사람이었어요. 가까운 친구가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과 여행을 다녀온 뒤 달라지는 걸 보고, 저도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어요. 돈을 갚는 건 갚는 거고, 그걸 제 기분과 엮어서 우울해하지 말자고요.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이 있으면 옆 칸으로 가면 되는 것처럼, 싫은 건 피하고 제 기분은 지키려고 해요.
해본 일이 생기니, 저를 설명할 말도 생겼어요
대학원에 다닐 때는 포럼이나 강연에 많이 다녔어요. 끝나고 명함을 나누는 자리에서, 연구실 명함밖에 없던 저는 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제 것이 없으니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자리를 더 쫓아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자리에 잘 안 가요. 제 일을 하느라 바쁘고, 제가 기획하고 이어온 전시가 있으니까요. 이 전시 아이디어로 해커톤에 나가 대상을 받기도 했어요. 예전엔 상을 못 받고 혼자 자책하며 집에 가는 날이 많았는데, 이번엔 다른 팀 사람들이 먼저 명함을 건네러 왔어요. 늘 제가 명함을 들고 찾아가던 쪽이었는데, 반대가 되니 짜릿했어요.
하면 할수록 기업 대표님, 컬렉터, 갤러리처럼 도와주는 분들이 생겼어요. 참여한 작가님이 전시가 좋았다고 말해주면, 그 칭찬 하나로 한 달은 버틸 수 있어요.
해보는 게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에요. 지금도 두려워요. 그래도 해보고 나면, 안 했던 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누가 등을 밀어주지 않았으면 생각만 하다 아무것도 못 했을 것 같아요.
해봤는데 과정이 맞지 않거나 생각과 다르면 다른 쪽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창업을 준비해 보고 나서 이건 아니라며 회사로 간 친구도 있어요. 그것도 해봐서 알게 된 거예요. 생활의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지만, 갈팡질팡한 것 같던 경험들도 뒤를 돌아보면 다음 일로 이어져 있어요.
저는 제 경험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함께 넓혀가는 걸 좋아해요.
갈팡질팡한 것 같던 경험들도 뒤를 돌아보면 다음 일로 이어져 있어요.
2026년 9월에 나눈 이야기예요.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분은 인스타그램 @robkim으로 연락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