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미련이 없어요

미래

· 나를 가장 사랑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나무가 우거진 하노이의 거리, 오토바이들이 지나가는 모습

20대 후반에 캐리어 하나만 들고 집을 나와, 부모님과 연락을 끊었어요. 몇 년 뒤 다시 관계를 이어보려 했고, 함께 여행도 갔지만, 반복되는 금전 요구 앞에서 다시 거리를 두게 됐어요. 처음과 달라진 건 관계의 결과가 아니라 제 생활이에요. 살 집과 일이 있고, 곁에서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해본 시도

집을 나와 생활 분리하기 · 친구들의 도움 받기 ·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 상담 · 부모님과 다시 연락해 보기 · 감당할 수 없는 요구 거절하기

20대에는 제가 실패한 사람 같았어요

20대에는 제가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입시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대학원에 가려던 계획도 사정상 접었어요. 왜 내가 계획하는 일은 자꾸 안 될까 싶었어요.

대학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따라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어요.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재미도 있었지만, 일을 잘한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어요. 저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 같았어요.

가족과의 관계도 오래 힘들었어요.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다시 만나기도 했고, 지금은 다시 연락하지 않고 있어요. 같은 상황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은 처음과 많이 달라요.

가족의 형편을 제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고등학교 때 받은 장학금을 어머니께 드렸고, 대학에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면서 집에 부족한 돈을 보탰어요. 어머니가 갚아주겠다고 하셔서 학자금 대출도 받았는데, 결국 제가 갚았어요.

저는 계속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드리더라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알고 싶었어요. 한 달 카드값이 얼마인지, 식비와 다른 지출은 어느 정도인지 같이 보자고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직장에 들어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는 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매달 백만 원씩 달라고 하셨어요. 제 월급이 이백만 원 조금 넘을 때였어요. 제가 갚아야 할 대출도 있는데, 또 그렇게 돈을 드리며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을 나왔지만, 바로 제 집이 생긴 건 아니었어요

처음 집을 나올 때는 짐을 챙겨 친구 집으로 갔어요. 이후에도 대여섯 명의 친구 집을 옮겨 다녔어요. 어디에서 지낼지 제가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버려진 것 같은 마음이 컸어요. 집에서는 벗어났지만, 제 생활이 안정된 건 아니었으니까요. 마음도 아주 힘들었어요.

친구들 도움을 받으며 돈을 모아서 쉐어하우스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들었던 것과 달리 냉난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외투를 입고 지냈어요. 거기서 여덟 달 정도 살았어요.

그때도 일을 하고 있었어요.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제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고, 생활이 불안정해서 힘들어하는 걸 이해해 줬어요. 친구들이 머물 곳을 내주고, 동료들이 사정을 들어준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상담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오래 했어요

여성단체에서 일하면서 만난 선배들에게 개인적인 고민도 이야기했어요. 그분들이 상담을 받아보면 좋겠다고 권해 주셨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그전부터 받고 있었지만, 제 안에 쌓인 생각들을 따로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상담은 약 2년 반 동안 받았어요. 상담 선생님이 제 상태를 서랍에 비유하셨어요. 안에 물건이 마구 쌓여 있으니, 꺼내서 개고 다시 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요. 저에게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게 그런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컸어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제게 계속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상담에서는 부모님이 살아온 환경과 그분들 나름의 노력도 돌아봤어요. 저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셨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어요. 다만 그 방향이 저를 힘들게 했던 거죠. 그런 여러 마음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 같은 이야기를 아주 오래 했어요.

다시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연락을 끊고 지내는 동안에도 가족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특히 명절이 힘들었어요. 동료들은 각자 고향에 간다고 하는데, 저는 갈 곳이 없다고 느꼈어요. 그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했어요.

다시 연락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일도 계기가 됐어요. 아버지가 일을 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당시 법률 지원 업무를 하고 있어서, 제가 아는 방법으로 도와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돈을 받을 수 있다면 대출도 갚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조금 풀리고, 가족이 다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아직 어머니를 만나는 건 무서워서 아버지에게 먼저 연락했어요.

어머니 앞에서는 돈을 달라는 말에 싫다고 해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잘 나지 않았어요. 거절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만나면 몸이 떨렸어요.

그래도 다시 연락하며 지낸 약 2년은 좋았어요. 함께 여행도 가고, 동생의 졸업식에도 갔어요. 다시 한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관계를 이어갈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못 한다고 말했어요

그러다 부모님에게 다시 큰 빚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또 해결할 방법부터 찾아봤어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법적 절차를 쓰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제안한 방법 대신, 저에게 그 돈을 갚아달라고 하셨어요.

이번에는 못 한다고 말했어요. 저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고, 제가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상담을 받기 전과는 달리 그렇게 답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대화는 좋게 끝나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다가 겨우 다시 만났는데,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다시 연락을 하지 않게 됐어요.

처음과 달리, 더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처음 연락을 끊었을 때는 명절마다 울고, 가족이 없어진 것처럼 느꼈어요. 다시 연락하지 않게 된 지금도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니지만, 그때처럼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아요.

저는 관계를 회복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다시 만나고, 함께 여행도 가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방법을 찾아봤어요. 그때보다 더 노력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미련이 남는 일이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결과여도, 제가 더 해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느끼면 아쉬움이 남잖아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봤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어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제가 안전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마음먹기만 하면 괜찮아지는 건 아니에요. 제가 지금 부모님 없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제 생활이 안전해졌기 때문이에요. 직장이 있고, 같이 사는 동생이 있고, 연인과 친구들이 있어요.

예전처럼 아무 기반도 없이 혼자 있는 상황에서 같은 일을 겪었다면, 이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저를 지탱해 주는 것들이 있어요.

너무 힘들 때는 냉장고 문을 열어서 뭘 꺼내 먹는 것조차 못 했어요. 병원에 제때 못 가니 약도 떨어지고, 더 힘들어지기도 했고요. 그럴 때 친구가 함께 병원에 가줬어요. 제가 혼자 마음을 단단히 먹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에요.

주거가 불안정했던 시간을 많이 겪어서, 저는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작게 시도하고 조금씩 얻는 선택을 하는 편이에요. 제게는 돌아와서 쉴 수 있는 생활이 있다는 게 중요해요.

부모님께 바라던 것을, 제 생활에 만들어가요

예전에는 부모님께 받고 싶은 것을 받지 못했다는 마음이 컸어요. 지금은 그중 어떤 것은 제가 저에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돈도 없고 빚만 있던 20대에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웠어요.

가장 힘들던 무렵에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부모의 사랑이 당연한 게 어디 있냐고, 네가 너를 사랑해 주면 되는 거라고요.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건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물이 새지 않는 집, 누가 가져가지 않는 제 통장, 그리고 누군가 옆에 있다는 감각이요.

동생과 함께 살면서, 제가 부모님께 기대했던 돌봄을 동생에게 해주기도 해요. 그렇게 지내는 일이 제 마음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누워서 빗소리를 들어요

지금은 동생과 방이 두 개인 집에 살아요. 그전에는 원룸에서 같이 살았어요. 그때도 비 오는 날이면 둘이 누워서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누운 채로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요.

어릴 때 살던 집은 비가 오면 물이 샜어요. 물을 피해서 누울 자리를 옮겨야 했어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냥 누워서 밖에 내리는 비를 들으면 돼요.

요즘도 일이 많아서 늘 행복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제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그냥 살 때예요. 별일 없이 살아갈 때요.

제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그냥 살 때예요. 별일 없이 살아갈 때요.

2026년 9월에 나눈 이야기예요.

유쾌한반란

본 프로젝트는 (사)유쾌한반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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