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최선을 다해도 안 되던 날들, 저를 돌보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김용덕
· 나를 열심히 돌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사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애썼고, 첫 직장에서도 경력을 쌓고 싶었어요. 그런데 노력만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었어요. ADHD 진단을 받고 일을 그만둔 뒤, 가족과 떨어져 살며 제 생활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관계에서 조금 덜 애쓰는 법을 배우고, 형에게 필요한 도움도 찾아가고 있어요.
해본 시도
돌봄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 · 내 이야기를 책에 쓰기 · ADHD 진료와 치료 · 가족과 떨어져 살기 · 시설 관리 일을 하며 생활 이어가기 · 서울의 공공기관에 지원하기 · 형과 복지관 찾아가기 · 관련 전공 대학원 입학 · 경조사 선택해서 참석하기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면, 그게 실패예요
저한테 실패는 단순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과는 달라요. 이미 되돌릴 수 없다고 느끼거나, 제 힘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밀려올 때 실패라고 느껴요.
목표가 있었느냐보다 중요한 건 제가 최선을 다했느냐예요.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거나 일이 풀리지 않으면 실패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일을 많이 벌이는 편이에요.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고, 저 또한 겪었기에 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가장 좋은 결과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결과는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삶에서는 대인관계와 첫 직장, 가족 안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떠올라요. 잘해보고 싶었고 애도 썼는데, 제 노력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일들이었어요.
잘 지내려고 애썼지만, 혼자인 시간이 길었어요
10대 시절 내내 대인관계를 잘 맺지 못했어요. 따돌림도 당했고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어요.
어릴 때 살던 지역에서는 제 말투가 다른 아이들과 달랐어요. 아이들은 저를 ‘도련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경기도 분이셔서 서울말씨를 쓰셨는데, 저도 그 말투를 쓰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잘 지내려고 애썼는데도 관계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들이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떠올리는 10대의 추억이 저한테는 많지 않아요. 친구들과 마음 놓고 놀며 우정을 나눈 기억이요.
혼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대학교에 가면서는 제가 대인관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초중고 때는 같은 학교 안에서 계속 마주쳐야 했지만, 이제는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10대 때 못 해본 관계와 경험을 만회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 선택이 너무 많아졌어요. 이미 만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명이라도 더 알고 지내려고 했어요. 관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생겼는데, 저는 오히려 너무 많은 관계를 붙잡으려 무리했던 거예요.
‘관계중독’이라는 말을 접했을 때, 딱 제 이야기 같았어요. 저에게 좋지 않은 관계도 놓지 못하고, 싫은 소리를 못 했어요.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도 어떻게든 맞추려고 했고, 돈이 부족해도 사람을 만나려고 무리해서 쓰기도 했어요.
경조사는 빠짐없이 챙기려고 했어요. 아는 사람들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냈고요. 평소에 연락을 해둬야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이 실제 약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명이라도 더, 마치 수집하듯 사람을 모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관계를 피상적으로 대할 때가 있었어요. 진심으로 한 말이 상대에게는 가식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하면, 미움받는 것도 혼자 있는 것도 싫었어요. 둘 다 겪어봤으니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남을 도우면서 저를 돌봤어요
대학교 때는 돌봄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어요. 장애인 복지관 행사를 돕고,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었어요. 사회복지사를 준비해서 고른 일은 아니었어요. 같은 시간을 일한다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런 일을 할 때 저도 위로를 받았어요.
돌아보면 그게 저를 돌보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따돌림을 겪었던 시간도 있었고, 장애가 있는 형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제 자신과 가족을 충분히 돕지 못했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던 거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누군가를 도우면서 그 마음을 조금씩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책에 썼어요
만 스물네 살 때, 책 작업을 하던 지인이 연락해 왔어요.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담는 책에 제 경험도 써보면 어떻겠냐고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어요.
쓰는 동안에는 힘들었어요. 옛날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제 이야기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래도 청소년 시절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았어요. 슬픈 기억을 글로 옮기다 보니 감정이 조금 풀리고, 생각도 정리됐어요.
실물 책을 받아 손에 들고 읽으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 내가 그때 이랬지’ 하면서요. 몇 명이나 읽었을지는 모르지만, 제 이야기를 쓰고 책으로 만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어요. 그때는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 남아 있던 마음의 큰 고비를 하나 넘은 것 같았어요.

첫 직장을 다섯 달 만에 그만뒀어요
책을 내면서 제 개인적인 결핍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간 뒤, 다시 다른 어려움을 만났어요.
첫 직장은 청년센터였어요. 계약 기간이 2년 반이었고 연장도 가능했어요. 여기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면 더 큰 기관에서도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의욕이 넘쳤고, 일터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집중하고 일정을 챙기는 일이 어려웠어요. 지하철에서 내릴 역이나 환승을 놓치고, 종점까지 가기도 했어요. 외장하드나 지갑, 신분증,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고요.
더 힘들었던 건 무언가 잊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거였어요. 화상회의 약속을 잡아도 프로그램과 시간, 요일이 헷갈리다가 누구와 어떤 약속을 했는지까지 놓치곤 했어요.
겉으로는 말도 잘하고 야무져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실수가 반복되면 주변에서도 의아해했어요. 그 반응에 우울해지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상대가 한 중요한 말을 기억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기도 했고요.
그전까지는 제가 ADHD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는 시간표를 직접 짜고, 학기마다 만나는 사람과 환경도 매번 달랐거든요. 특히나 저 같은 경우엔 여러 활동을 하면서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이 바뀌다 보니, 어려움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과 일해야 하니 실수가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 ADHD를 다룬 방송을 보고 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다니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했고, 다른 병원에서도 검사를 받은 뒤 ADHD 진단을 받았어요. 저는 겉으로 드러나는 과잉행동보다 주의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진단을 받고 나니 그동안의 어려움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여기기도 했어요. 약을 먹어도 기대한 만큼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꼈고, 복용을 잊거나 약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어요.
사무행정 일을 원했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업무와 일상을 이어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버거웠고, 결국 다섯 달 만에 퇴사했어요.
누군가는 다섯 달 일하다 그만둘 수도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어요. 경력을 쌓고 싶었던 직장에서, 결국 제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충격이었어요. 앞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컸어요.
퇴사 뒤에는 술에 기대기도 했어요
퇴사한 뒤에는 번 돈으로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마시는 동안에는 우울한 기분이 잠깐 가라앉는 것 같았어요. 문제를 마주하기보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돈이 떨어지니 다시 일을 해야 했어요. 그렇다고 곧바로 사무행정 일을 할 자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떨어진 지역에 야간 2교대 시설 관리 일을 구하고, 그곳에서 자취를 시작했어요.
일부러 집에서 먼 곳을 골랐어요. 저 자신을 돌보는 것도 버거운데, 집에서는 형과 부모님의 어려움까지 매일 마주해야 했거든요.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과음은 하지 않을 거예요. 어느 날 아침 거울 속 제 얼굴을 보고 건강이 걱정됐어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아 술에 기대던 생활을 멈추게 됐어요.

가족과 떨어져 살며 숨을 돌렸어요
산과 논밭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어요. 자취방 문을 열면 평온했어요. 그곳에서 반년간 일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숨을 돌렸어요.
혼자 사니까 제 상태를 돌아보고 생각할 시간이 생겼어요. 그때 ADHD를 받아들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가족과 떨어져 제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집에서 매일 부딪힐 때와는 다른 여유도 생겼어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오히려 애틋해지기도 했고요.
제 경우에는 긴장과 불안이 가라앉으면서 생활도 조금씩 나아졌어요.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되니 자신감이 붙었고, 다시 지원서를 내볼 마음이 생겼어요.
떨어지더라도 지원해 보자는 생각으로 원서를 냈는데, 서울의 공공기관에 합격했어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 이번에는 서울에서 지내보기로 했어요.
서울로 올라온 경상도 청년 다섯 명이 함께 쓴 책 ‘별안간 서울’을 총괄기획하기도 했어요.

멀어지니까 애틋해졌어요
서울에서 지내며 가족을 가끔 만나니 오히려 애틋해졌어요. 부모님도 제가 서울에 취업한 걸 기뻐하셨고요.
형에게 화를 내는 일도 줄었어요. 저는 형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형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있고요. 거리를 두고 지내니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안고 형을 대하는 게 조금 나아졌어요.
거리를 두고 지낸다고 가족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나이 드신 뒤에야 형에게 필요한 도움을 찾기 시작하면 준비가 늦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미리 조금씩 알아두고 싶었어요.
형에게 필요한 도움을 찾아갔어요
형은 자폐 스펙트럼과 경계선 지능 진단을 받았어요. 제가 형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초등학교 2, 3학년 때였어요.

형에게 필요한 도움을 두고 부모님과 부딪혀온 건 오래된 일이에요. 부모님은 형을 성장이 조금 느린 아이로 여기셨어요. 저는 검사를 통해 형의 상태를 알아야 어떤 도움을 받을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첫 단계부터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어요.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형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가족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는 반응을 들었을 때예요. 동생으로서 잘 지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관련 내용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가족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직접 겪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려웠어요.
지금은 관련 일을 하니까 도움을 찾는 방법을 알지만, 처음에는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요. 우선 제 주치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추천받은 병원이 있으면 찾아가고, 그곳에서 또 다른 곳을 소개받으며 알아갔어요. AI가 없던 시절이라 검색에도 한계가 있어서, 발품을 팔 수밖에 없었어요.
인터넷으로 복지관도 검색했어요. 형이 참여할 만한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찾아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사정을 들은 담당자가 형을 한번 데려와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형과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 면담하고, 복지관에 등록했어요.
그렇다고 한 번 설명해서 부모님을 설득하고, 곧바로 형을 데려갈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차분히 말씀드리기도 하고, 부딪히고 싸우기도 했어요. 떨어져 지내며 잠시 거리를 둔 적도 있고요. 여러 방법을 거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어요. 2022년쯤부터 부모님이 받아들이기 시작하셨고, 형이 복지관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 목표는 형의 장애 등록이에요
지금은 형의 장애 등록을 준비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안 계신 뒤에도 형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거예요.
인터뷰하는 지금은 형과 함께 갈 큰 병원 진료를 예약해 둔 상태예요. 그날에 맞춰 회사에 연차도 냈어요. 형의 상태를 다시 살펴보고, 장애 등록 가능 여부와 필요한 절차도 확인하려고 해요. 등록이 어렵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나중에 한꺼번에 준비하기보다 지금부터 조금씩 알아가려고 해요. 10년 전에는 꿈도 못 꿀 이야기였어요. 지금은 부모님도 저에게 맡겨보겠다고 하세요.
지금 저는 정신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 지 2년이 다 돼가요.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에도 올해 입학했어요. 돌아보면 학부 때 돕는 아르바이트를 고른 것부터, 삶이 계속 이쪽으로 흘러왔네요.
이제는 결혼식을 골라서 가요
예전에는 청첩장을 받으면 무조건 가거나, 못 가면 축의금이라도 보냈어요. 지금은 모든 결혼식에 가려고 하지는 않아요. 어떤 관계인지, 제가 가고 싶은지 생각하고 선택해요. 저한테는 큰 변화예요.
제가 애쓰는 만큼 관계가 유지되거나 마음이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누군가가 특별히 나빠서도, 제 노력이 부족해서만도 아니었어요. 서로의 생활이 달라지면서 멀어지는 관계도 있었어요.
그걸 알아가는 데에는 군대와 사회생활이 계기가 됐어요. 군대에 있을 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을 쓸 수 없어서 연락이 줄었고, 졸업 후에는 친구들이 취업하며 전국으로 흩어졌어요. 저도 친구들도 각자의 생활을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이어지는 관계가 있었어요. 제가 계속 애쓰지 않아도 서로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하나씩 알게 됐어요. 그런 관계에서는 조금 덜 노력해도, 마음을 불편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누군가 저를 싫어할까 봐 예민해질 때는 있어요. 그래도 예전처럼 모든 관계를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아요.
지금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현실적으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외로움을 채웠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도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제가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바꾸려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더 슬퍼지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내일 출근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상에 집중하며 살고 있어요.

저도 돌보고, 가족도 돕고 싶어요
돌아보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저 자신과 가족을 포기하지 않은 거예요.
한때는 떨어져 살아야 숨을 돌릴 수 있었어요. 지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해요.
함께 사는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으로 매달 생활비를 조금씩 드려요. 언젠가는 다시 혼자 살면서 제 삶도 꾸려가려고 해요.
그래서 지금은 내일 출근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상에 집중하며 살고 있어요.
2026년 8월에 나눈 이야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