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직

개발자가 되고 싶었는데, 기획자가 됐어요

서원경

· 개발 공부를 거쳐 IT 기획자로 일하는 회사원

나무가 우거진 하노이의 거리, 오토바이들이 지나가는 모습

첫 직장에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다 서비스 기획에 재미를 붙였어요. 전문성을 갖고 싶어서 개발자 부트캠프에 들어갔지만, 개발자가 되지는 못하고 IT 기획자가 됐어요. 저는 그 과정을 실패라고 봐요. 그래도 그 시간을 거쳐, 지금은 기획부터 개발까지 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해본 시도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기 · 러닝·수영·요가 · 개발 부트캠프 · 1인 게임 개발

시도했는데 잘 안 된 것, 그게 실패예요

인터뷰를 앞두고 실패를 먼저 정의해 봤어요. 저한테 실패는 하려고 시도했는데 잘 안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시도를 했다는 게 있어야 해요.

그렇게 보면 재수도 실패라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재수하기 전에는 어디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노력해 본 경험이 없었거든요. 좋은 학교면 좋을수록 좋다는 정도였고, 이대로 입시를 끝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열심히 안 한 게 아쉬워서 한 번 더 한 거예요.

취업할 때도 뚜렷한 방향이 없었어요. 학교에서 했던 활동을 살려 출판사나 콘텐츠 회사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더 깊은 경험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면 자신이 없었어요. 큰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정하지 못했어요.

그때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상처보다 막막함이 컸어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까 선택지가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거요. 뭐라도 좀 길이 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실패를 별로 안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정말 하려고 시도했는데 잘 안 되고 어려웠던 게 하나 있어요. 직무 전환이에요.

저를 찾아주는 회사에 갔어요

첫 직장은 교육 회사였어요. 사회·역사 콘텐츠 담당자로 들어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학생들이 이용하는 문제와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었어요.

시즌에 맞춰 강좌를 기획하고, 선생님과 함께 촬영하고 검수했어요. 짧게 볼 수 있는 영상 강의나 시험 문제도 만들었고요. 문제 풀이 서비스에서 사용자가 난이도를 고르고, 문제를 풀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의 흐름을 짜는 일도 했어요.

일이 많았고 야근도 자주 했어요. 첫 회사에서는 제가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제 힘에 부칠 만큼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저만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동료들은 교육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선생님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어요. 저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교육 분야의 경험은 부족했어요.

문항을 낼 때는 저도 문제집을 보면서 했어요. 계약이 끝난 강사의 강의에도 질문 게시판은 남아 있어서, 거기 올라오는 질문에 제가 답했어요. 알고 있는 내용도 다시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찾아 답했어요.

없던 걸 만들어서 사람들이 쓰게 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 일을 하면서 IT 쪽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이 아니어도 다른 업종으로 갈 수 있는 직무라고 생각했거든요. 역사에서 몇 년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찾아서 답하는 일에는 크게 재미를 못 느꼈어요.

재밌었던 건 예비 중학생을 위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때였어요. 강사가 진행하는 게 아니라, 마인드맵으로 단어를 채워가고 캐치마인드처럼 그림 퀴즈를 푸는 방식이었어요. 아예 없던 걸 새로 만드는 거라 정책도 새로 만들어야 했고, 어떤 그림을 만들지 기획해서 다른 과목 담당자들한테 설명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없던 걸 새로 만들어서 실제로 사람들이 쓰는 걸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교과 과정이 몇 년마다 바뀌면 문제도 새로 내고 기존 서비스도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그때 가장 많이 소통한 게 IT 기획팀이었어요. 저는 필요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분들이 쓰는 스토리보드 단계까지 상세하게 그리는 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퇴사할 때, 사실 정해진 건 없었지만 개발자를 하고 싶어서 그만둔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IT팀 팀장님이 그럼 우리 팀으로 와서 일하면 되지 왜 퇴사를 하냐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어떤 전문성이든 갖고 싶었어요

기획이 재밌다는 걸 알았는데도 개발 부트캠프에 간 건 전문성을 갖고 싶어서였어요. 처음부터 개발이라는 분야를 정해 두었다기보다는, 저만의 전문성을 쌓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역사 콘텐츠를 담당할 때, 조선시대나 선사시대를 3D로 구현한 실감형 콘텐츠를 접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 나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트캠프 면접을 준비하면서 돌아보니, 그때 느꼈던 관심도 떠올랐어요.

한 달은 정말 누워만 있었어요

2년 2개월을 일하고 그만둔 뒤 3개월을 쉬었어요. 그중 한 달은 정말 누워만 있었어요. 힘이 없었거든요. 집에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가 있었는데, 치과처럼 모니터 암이 앞으로 오게 배치해 두고 일어나지 않아도 되게 해놨어요. 옆 의자에 음식을 두고 먹고, 그대로 자고요. 그렇게 누워서 <브레이킹 배드>만 봤어요.

누워 있는 동안 엄청 초조했어요. 왜 몸이 안 움직여지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주말 하루 이틀 그러는 거면 다음 날 출근하고 월급도 나오니까 괜찮은데, 한 달 내내 그러고 있었으니까요. 걱정은 됐지만 어차피 몸이 안 움직여졌어요.

그런데 한 달쯤 쉬니까 다시 뭔가 해볼 마음이 생겼어요.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저한테는 2년 2개월 동안 긴장하며 일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나머지 두 달은 운동하고 밥을 해 먹으며 지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20분 정도 뛰어 체육센터에 가서 수영을 배우고, 밥 먹고 다시 뛰어서 집에 와요. 그때 집에서 밥을 많이 해 먹었는데, 밥만 해 먹어도 하루가 가요. 저녁에는 또 뛰어서 동네 요가원에 갔어요.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친구들도 만났어요.

쉬는 동안 생활비는 퇴직금으로 썼어요. 이후에도 일을 해서 버는 수입이 없는 기간이 이어져, 결국 퇴직금을 다 쓰게 됐어요.

퇴사하고 쉬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 의무감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예요. 저한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어요. 집밥을 해 먹는 것도 좋았어요. 평소에는 만드는 시간에 비해 너무 금방 먹어버리는 게 아쉬웠는데, 쉬는 동안에는 밥을 만들고 먹는 데 시간을 들일 여유가 있었어요.

배우는 건 재밌는데, 평가받는 건 괴로웠어요

부트캠프는 찾으려고 찾은 게 아니었어요. 음성 인식 데이터를 만드는 녹음 아르바이트 같은 걸 찾으려고 채용 사이트를 보다가 공고를 봤어요. 거기서 배우는 프로그램이 뭔지도 잘 모르고 지원했고, 들어가서 알았어요.

지원한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운영하는 곳이 이름을 들어본 곳이었고, 전 회사에서 다들 이직하고 싶어 하던 회사였어요. 공고에는 인턴을 거쳐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쓰여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정규직 입사가 목표였어요. 저는 개발 경험이 없었는데, 다 알려준다고 쓰여 있어서 지원했고 다행히 면접까지 보고 붙었어요. 그런데 들어가 보니 30명 중 개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세 명 정도였어요. 대부분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거나 복수 전공한 사람들이었어요.

저랑 제일 가까워진 동료도 디자이너로 6년을 일했고, UX 관련 대학원을 나와서 개발자들과 팀 프로젝트를 많이 해본 분이었어요. 정말 경험이 없다고 할 만한 건 저랑, 아직 졸업 안 한 대학생 한 명 정도였어요.

노력하는 와중에 그렇게 성적이 안 좋았던 경험은 별로 없었어요. 배우려고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두 달쯤 지나 겨우 덧셈, 뺄셈을 짜고 있을 때 코딩 테스트를 봤어요. 줄을 세워서 상위 대여섯 명을 조기 인턴으로 보낸다는 거예요. 조기 인턴 안 할 테니 시험 안 보면 안 되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도 없었어요. 시험을 보는데 주석으로 편지를 쓰고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시험 보면서도 자괴감이 들었어요.

성적표를 나눠주지는 않았는데, 선발된 사람들이 가고 나서 운영하는 팀장님과 교육생들이 모인 긴급 간담회 같은 게 열렸어요. 이 성적이면 나중에 전환이 안 될 수도 있고, 인턴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점수대별로 몇 명인지 쭉 보여줬는데, 최하위 3명이 PPT에 빨간 박스로 표시돼 있었어요.

그 뒤에 우리 셋 중에서는 누가 제일 낮을까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아마 제가 꼴등일 것 같았어요. 창피하고 모욕감도 들었어요. 그만두고 싶었지만, 배우는 것 자체는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었어요.

제 아이디어가 뽑혀 팀장이 됐어요

혼자 공부할 때는 재밌었어요. 제가 배운 건 유니티라는 게임 개발 엔진이었는데, 혼자 만들고 싶은 걸 만들고, 코드는 엉망진창이어도 어쨌든 돌아가는 걸 보면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꼈어요. 게임이라는 게 이렇게 재밌구나,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재밌구나 알게 됐어요. 내가 생각한 걸 1인 개발로 구체화할 수 있구나 싶어서, 이걸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시험은 유니티 안에서 주어진 문제를 구현하고 코드와 결과물을 제출하는 방식이었어요. 그 시험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어요.

부트캠프의 마무리는 팀 프로젝트였어요. 출시할 만한 게임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거였는데, 각자 방학 동안 생각해 온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투표로 두 개를 뽑아 팀을 나눴어요. 제 아이디어가 뽑혔고, 제가 팀장을 맡게 됐어요.

그때도 실패라고 느꼈어요. 개발자로 직무를 바꾸려고 공부한 건데, 제가 개발을 하면 너무 비효율적이었거든요. 어떻게 구현할지 그림이 잘 안 그려지니까 생각하는 데도, 구현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결과물에서도 버그가 많이 나왔어요. 핵심 로직을 제가 맡으면 속도도 안 나오고 결과물도 안 좋은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팀원들은 실력이 다 좋았어요.

그래서 1인분을 하려고 엄청 애썼어요. 개발자로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별로 맡고 싶어 하지 않을 일정 정리나, 디자인 리소스를 만들고 찾는 일을 나서서 했어요.

끝나고 팀원들끼리 롤링페이퍼처럼 동료 평가를 주고받았는데, 그걸 보기가 너무너무 두려웠어요. 그런데 다들 안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줘서 고마웠다는 얘기가 있어서 정말 감동했어요.

정규직이 됐지만, 개발자는 아니었어요

마지막 프로젝트는 플레이스토어 출시까지 했어요. 최종 평가로 전체 프로젝트 발표와 각자 맡은 작업 발표가 있었는데, 팀장이기도 했고 제가 개발로 한 게 적으니 프로젝트 발표를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제 업무를 설명할 때도 개발 요소보다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운영하려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어요.

출시 막바지까지 개발자로서 뭔가를 어필하고 싶어서, 사용자는 안 쓰지만 유지보수하고 확장할 때 쓸 내부 툴을 만들려고 밤새 용을 썼어요. 그것도 잘 안 돼서 결국 못 넣었어요. 그래도 면담 때 그런 노력을 많이 이야기했고, 인턴이 됐어요. 2023년, 서른 살 때였어요.

인턴 4개월은 마지막 팀 프로젝트의 연장선 같았어요. 데이터, 3D, AI 세 팀으로 나눠 새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제였는데, 저는 데이터팀이었어요. 생성형 AI로 영어 학습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평가하는 제품에서, 그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내보낼지 설계하는 일이었어요.

개인 과제를 할 때도 개발 실력보다 아이디어에 힘을 싣게 됐어요. 발표할 때마다 제 기초가 부족하다는 게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어요.

인턴 팀 프로젝트에서도 제 몫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데이터를 설계하고 사용하는 방식을 기획하는 데 힘을 많이 썼지만, 결과물은 잘 돌아가지 않았고 겉으로 보여줄 것도 적었어요. 팀원들은 열심히 하고 저에게도 호의적이어서 더 아쉬웠어요.

결과적으로 저희 팀 네 명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전환되지 못한 다른 동료들도 있었어요. 저는 제 개발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부채감이 남았어요.

그런데 저는 개발자가 아니라 IT 기획자로 입사했어요. 개발자 직무 전환은 최종적으로 실패한 거예요.

직무가 달라지니, 마음의 경계도 풀렸어요

돌아보면 기획자가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개발자를 계속했다면 다른 사람들과 제 실력을 비교하며 힘들어했을 것 같아요. 당시 기획자로 일할 기회를 받아들인 건 저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느껴요.

공부하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아요. 남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제 실력을 쌓는 것보다 당장 주어진 과제를 끝내는 데 집중했어요. 좀 더 제 실력을 키우는 데 힘을 썼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질문하는 것도 창피했어요. 기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할까 봐 경계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직무가 달라지니까 그 경계가 확 풀렸어요. 입사하고 나서 오히려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랑 더 친해졌어요.

저는 개발자로 직무를 바꾸려던 과정을 실패라고 봐요. 하고 싶었던 건데 안 된 거니까요. 공부에 아쉬움은 남지만, 그 시간을 버티느라 고생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IT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어요

개발자로 직무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지만, IT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긴 했어요. 콘텐츠 기획자랑 IT 기획자는 그래도 다르고, 그 팀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들로 다른 회사에 지원할 포트폴리오도 생겼어요.

지금은 개발 공부를 거쳐서 기획을 하길 잘했다고 느껴요. 개발을 해본 경험 덕분에 관련 업무를 맡을 기회가 생겨요. 입사 후 2년 넘게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팀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AI를 활용해 기획부터 개발까지 하는 업무를 맡게 됐어요.

개발을 직업으로 삼는 데는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어요. 요즘은 AI를 활용해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을 구체화할 수도 있으니까요.

깨끗하거나 아니거나, 그 사이도 있더라고요

이것과는 다른 결로, 저는 일상에서 늘 실패하고 있어요. 집을 정돈하는 일, 그리고 지각하지 않는 일이요. 학창 시절부터 15년 넘게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는 영역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만큼 깨끗하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면 다 실패였죠. 그런데 요즘은 그 사이에 중간 단계도 있고, 중간 단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번에 몰아서 치우는 성향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목표는 너무 더럽지 않게, 최악의 상태만 아니게 오래 유지하는 거예요.

이것도 다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집이 깨끗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지각도 안 해요.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졌을 때는 정말 나가기가 힘들고요.

친구가 집에 놀러 오기로 하면 그걸 계기로 치우곤 했어요. 한번은 친구 둘과 술을 마시고 저희 집에서 자기로 했는데, 약속 당일 청소기가 고장 난 걸 알았어요. 어떻게든 치웠지만 사람을 초대할 상태는 아니라고 느꼈어요.

결국 친구들에게 말없이 숙소를 잡았어요. 나중에 이야기했더니, 그냥 말했으면 다른 친구 집에서 자도 됐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꼭 대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던 것 같아요.

여기까지 잘 견뎌올 수 있었던 건 친구들, 동료들과 나눈 시시껄렁한 이야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저를 버티게 한 것도 일상 속에서 소소한 유머와 웃음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일이 있었지만, 솔직히 지금은 제 인생에서 평온한 때예요.

지금은 중간 단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26년 8월에 나눈 이야기예요.

유쾌한반란

본 프로젝트는 (사)유쾌한반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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